우리의 노래가 한 줌 모래가 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이 광장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구나 매일 밤 모든 길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그랬다

   - 강성은, '밤의 광장'에서 (Lo-fi, 문지 2018)

  
  
  
   우리의 노래가 한 줌 모래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래성을 쌓는 소녀를 불러내고
   소녀로 하여금 하얀 모래성을 쌓게 만들고  
   비바람에 모래가 씻겨 설령 소녀가 울어도
   등을 토닥이면서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면
    
   때때금 잔혹한 상처들은 모래성만도 못해
   노래가 사라진 광장에는 햇볕만 가득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공기 속 맑은 한 점 구름
   유일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수단? 이 낙타
   다시 낙타의 볼을 쓰다듬고 함께 대화하면

   너 왜 자꾸 반말이야?
   미안해
   하지 마
   알았어
   또 하네?
   ㅎㅎㅎ
   사랑해
   웃기네
   ㅎㅎㅎ
   사랑해요
   그만해 ㅋ
   ......
    
   귓가에 바람이 불고 다시 노래를 꺼낸다면
   훗날의 광장은 노래를 대신한 배경이 되고
   배경은 영원할 테며 오가는 이들만 사라져
   누군가는 사랑이 되고 그리움이 될 테지만
   별빛처럼 속살대면서 아름다울 수 있겠지  
  
   우리의 노래가 한 줌 모래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래성을 쌓는 소년을 또 부르고
   소년으로 하여금 하얀 모래성을 또 쌓으면
   비바람에 모래가 씻겨 설령 소년이 울어도
   다시 낙타와 함께 달빛 속으로 걸어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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