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플랫폼들을 익히느라 또 이번 주말을 금세 보내는 중입니다. 다들 잘 보내셨나요? ^^
   블로그를 개설한 지도 꽤 되었지만, 그동안 여러 사유들로 인해 한동안 소원했었는가 봅니다. 다양한 채널들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항상 염두에 두고 지내는 편입니다만…
   아직은 몇몇 동인들끼리만의 소박한 움직임일 테나, 끝에는 적어도 어떤 무시하지 않을 수준과 덩치를 갖는 모습도 자주 상상해 보곤 합니다.
   문장은 때때로 서글플 때가 많지만, 때때로 아름다울 적이 많아서 그 찰나의 순간들을 주로 견뎌내는 도구로 삼고자 해왔던 적이 많습니다.
   모쪼록 평안하고 차분히 이번 주말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제니 시인을 한 번 꺼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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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노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아침이 되면 머리에 흰 가루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의 길을 걸으면 겨울 바람이 불어오고 손과 발이 얼어붙고. 걷고 걷다 보면 어느 결에 허리가 굽어 있다. 이 고독이 감옥 같습니다. 말을 나눌 곳이 없어서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아직 쓰이지 않은 종이는 흐릿한 혼란과 완전한 고독과 반복되는 무질서를 받아들인다. 손가락은 망설인다. 손가락은 서성인다. 노인의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 노인의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다는 것. 휘파람을 불 때도 노인의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때도 노인의 마음으로. 노인은 어쩐지 외롭고. 노인은 언제나 다리가 아프고. 노인은 짐짓 모르는 척 고요히 물러나고. 노인은 노인의 마음으로 가만히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노인의 마음은 망설임을 갖고 있고. 노인의 마음은 말하지 않는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노인의 마음으로 거리를 걸으면 있지도 않은 문장은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있지도 않은 문장으로 다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나는 점점 더 붙박인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은 차고. 구름은 자고. 나무는 잎을 만나지 못하고. 비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흰 가루는 점점 더 수북이 쌓입니다.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거리를 나서면 다시 돋는 잎사귀 곁으로 노인의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 이제니,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현대문학,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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