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돋는 풀잎들에 부쳐
되어야 할 일이 있다면 네가 작아지는 일
네가 작아지고 작아져서 세상이 깜짝 놀라고
여기에, 생략처럼 아찔한 것이 있었구나
없는 줄 알았구나
하얗게 조심스러워지는 것
작아지고 작아져서 네가 부는 바람에도
아직 불어오지 않은 바람에도 철없이 흔들려
지워져버릴 것 같아서
용약勇躍 큰 걸음들이 그만 서버리고,
없음인 줄 알았구나
숨 멈추는 일
되어야 할 일이 있다면, 단 하나인 네가 막무가내로
여럿이 되는 일
황야의 연록 홑이불,
골목의 이글대는 거웃이 되는 일
없음이란 것이 무수히 생겨날 뻔했구나
없음을 목격할 뻔했던 가슴들이
도처에서 막힌 숨을 토하고
여기에, 생략처럼 무시무시한 것들이 있었구나
있음이란 것이 정말 있구나
종아리만 하고 장딴지만 한 나무로 멈추는 일
더없이 작은 걸음으로
도처에 커다랗게 활보하는 일
* 이영광, 끝없는 사람 (문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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