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향신문  

 

당선작 : 여기 있다 (맹재범, 197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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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든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분주히 주변을 지나친다
나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당신의 눈빛을 되돌려줄 수 없지만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간판과 자동차와 책상과 당신의 어깨까지
모든 것을 적실 만큼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심사평 : 밖으로 내몰린 존재가 여전히 있다는 믿음이 ‘여기 있다’

 
심사위원 송경동·이경수·진은영·황인숙(가나다순)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인 세밑을 지나며 지난 한 해를 가만히 돌아본다. 유독 버겁고 힘겨웠던 한 해였음을 신춘문예 시 응모작들을 읽으면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와 포스트휴먼의 감각을 드러내는 시는 작년에 이어 여전히 강세를 보였지만 눈에 띄는 새로운 경향으로는 삶의 고단함을 드러내는 시들이 많아졌음을 언급해야겠다. 전세사기나 택배 노동, 청년 문제 등을 다룬 시의 출현은 현실의 고단함이 여전히 시의 동력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를 읽고 쓰는 시간이 출구 없는 막막한 일상을 견디는 데 작은 버팀목이나마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모작들을 읽었다.

응모작들 중 눈에 띄는 네 명의 작품을 두고 오랜 토론이 이어졌다. 논의의 장에 올라온 시들은 ‘해파리와 사랑’ 외 4편, ‘수목’ 외 4편, ‘서빈백사’ 외 4편, ‘여기 있다’ 외 4편이었다. 각자의 시적 개성이 뚜렷하고 장점이 분명한 시들이었다. 머지않아 이분들의 시를 지면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해파리와 사랑’ 외 4편은 목소리의 색깔과 태도가 분명한 점이 매력적이었다. 개성적인 목소리라는 점에서 매혹적인 면이 있었으나 응모작들의 결이 유사한 점은 다소 아쉬웠다. ‘수목’ 외 4편은 마지막까지 거론된 응모작들 중 젊은 감각으로 현실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었다. 상실의 경험과 애도의 감각을 그린 ‘수목’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준 ‘도시의 두 블록을 태연히 돌아 나왔다’ 두 편 모두 인상 깊었다. ‘서빈백사’는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시였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긴장을 느슨하게 만드는 마지막 두 연이 없었다면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응모작들 간에 편차가 있는 점도 우리를 망설이게 했다. 세 분의 시는 당장 지면에 발표되어도 손색이 없는 좋은 시들이었다. 실망하지 말고 정진해서 조만간 지면에서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선작으로 최종 선택된 ‘여기 있다’는 투명인간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생활의 감각으로 어떻게 변용해 시적인 순간을 발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사라짐을 노래한 시는 많았지만, 당선작은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던 “나는 투명인간”이라는 선언을 통해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고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음을 담담히 보여주었다. 이 시의 고요한 단단함을 심사위원들은 믿어보기로 했다.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처럼 시도 그렇게 “여기에 있”음을 믿어보고 싶게 하는 시였다. 함께 보내온 응모작들 중 ‘물사람’과 ‘일요일’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응모작들이 고른 완성도를 지니고 있어서 오래 시를 써온 사람의 내공이 느껴졌다. 새로운 시인의 출발을 함께 기뻐하며, 시를 읽고 쓰는 고통의 시간에 차오르는 즐거움을 전해준 응모자들에게도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건넨다.

 
 
당선소감 : 오래 걸리더라도 기어이…‘일용할 양식’이 되는 그날까지
 
사골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뺍니다. 팔팔 끓는 물에 사골을 담그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불순물들이 올라옵니다. 밑이 넓은 국자로 기름과 불순물들을 건져내며 오래오래 육수를 우려냅니다. 뽀얀 육수가 올라올 때까지 불 앞에 오래 머무릅니다.
제가 그 과정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래 걸리더라도 기어이 따뜻한 한 끼가 되려 합니다. 새벽과 저녁이 익숙한 모든 사람이 제 은인입니다.
내 안에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기도 미안한 친구들과 선생님, 아버님, 어머님, 가족들 너무 많은 고마움을 떼어먹으며 버텨온 것 같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 영희, 우리가 늘 하는 농담처럼 꼭 갚아줄게!
엄마, 엄마 아들로 태어난 게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음을 말하고 싶어.
너무 뛰어난 사람은 하늘이 먼저 데려간다는데, 천국의 제일 목 좋은 자리에서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을 아빠, 아빠 옆에는 충무떡볶이 할머니랑 인제약국 아저씨랑 홍어아저씨랑 이모랑 큰아버지랑 대웅이랑 다 있겠지요? 늘 아빠 산소 앞에 가서 서글퍼하다만 와서 죄송해요. 이번엔 아빠 산소에 예쁜 꽃이랑 좋은 술 사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끄러움 말곤 자랑할 게 없는 저에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2. 동아일보 

 
당선작 : 왼편 (한백양, 1986년생)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집의 왼편에 있는 모든 빌라가
늙은 새처럼 지지배배 떠들면서도
일제히 내 왼쪽 빌라의 편이 되는
어떤 날과 어떤 밤이 많다는 것

내 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직 잠들어 있을 내 편을 생각한다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고 가끔 소고기를 사준다면
나는 그가 보여준 노력의 편이 되겠지

그러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고
오른편에는 오래된 미래가 있으므로
나는 한 번씩 그렇지, 하면서 끄덕인다

부서진 화분에 테이프를 발라두었다고
다시 한 번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하고 뭉그러진 바람이 밀려든다
밥을 종종 주었던 길고양이가 가끔
빌라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다행이다

고양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 편이 되어줄 사람들은 싸운 후에도
편이 되어주는 걸 멈추지 않는다
 
 
심사평 : 
 
전반적으로 올해 신춘문예 투고 편 수가 늘었다는 말이 들린다. 최근 들어 시집 가판대가 부활하고 각급 단위에서 시를 읽고 쓰는 모임이 다시 활성화됐다고도 한다. 물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시 읽기를 즐기고 시를 쓰는 것에서 어떤 보람을 느끼는 것 역시 노력과 수고를 요청하는 어떤 밀도와 깊이에 기반할 때 좀 더 매혹적으로 삶을 끌어당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심사위원들은 이번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의 밀도가 고르지 않다는 것에 공감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 현상을 꼽을 수 있겠다. 소소한 일상을 담담한 어조로 스케치하는 경쾌함은 있지만 부박함과 구분되지 않는 경우, 그럴듯한 분위기는 조성하고 있지만 알맹이가 없고 장황한 경우, 문장을 만들고 행과 연을 꾸미는 기술은 있지만 단 한 줄에도 시적 진술의 맛과 힘이 담기지 않은 경우들이 그것이다.

이런 난맥 가운데서도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네 편이었다. ‘그 이후’의 일부 문장들은 흥미롭게 읽히지만 전체적으로 시가 유기적으로 구성됐다고 판단하기 어려웠다. ‘컨베이어 벨트와 개’는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 언뜻 발견하는 휴지와 파국을 실감 있게 그려냈지만 전체적으로 묘사에 치중한 소품으로 보인다. 최종 경쟁작 중 하나였던 ‘수몰’은 삶과 죽음, 시와 현실을 얽는 솜씨가 돋보였고 이미지 구사도 견실했지만 주제를 장악하는 사유의 힘이 아쉬웠다. 심사위원들이 ‘왼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사유와 이미지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문제적 현장으로 벼리어 내미는 솜씨 때문이었다. 이미지를 통해 핍진하게 전개되는 사려 깊은 성찰이 마지막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더욱이 투고된 다른 시편들도 편차가 적어 신뢰를 더한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악수를 건넨다.

정호승 시인·조강석 문학평론가(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당선소감 :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나는 늘 기대를 저버리는 편이었다. 비록 운 좋게 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좋은 시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시들이 있다. 심사위원분들의 날카로운 관점과 별도로 응모한 다른 분들의 모든 시 또한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는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두렵다.

두렵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써야 할 것이다.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늘 두려워하며 살 것이고, 또 스스로를 경계하며 살아갈 것이다. 감사한 모든 분들….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은사님들과 심사위원분들을 호명해야겠으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될까봐 무섭다. 그러지 않으려면 결국은 시를 써야 할 것이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는 시를 쓰면서 살아갈 것이다. 뭔가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시를 쓰는 일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재주 없는 인간인지라 오랫동안 했던 일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지금처럼 좋은 일들이 올 수도, 또 나쁜 일이 올 수도 있겠지. 뭐 어떤가. 적어도 나는 그러려고 사는 것이다. 그러려고 쓰는 것이다. 딱 하나 욕심이 있다면 한 가지, 다시 한 번 시를 통해 독자분들과 만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시를 쓰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1986년 전남 여수시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3. 문화일보 

 
당선작 : 면접 스터디 (강지수, 1994년생)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
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낸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이제 그 음역대로 말하는 겁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당신의 목소리로요

엉거주춤 허리를 편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왔고……
멋쩍은 미소를 짓고 몇 번 더듬기도 하면서

말을 하다가 불쑥 허리를 접고 다시 아 아 거리는 이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선생님이 손짓한다
이리 와서 진짜 목소리를 찾아보세요

쭈뼛거리며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다
허리를 숙인다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시원하다

아 아 아
낮지도 높지도 않은 미지근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옆집 아이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어색하게 안부를 물을 때
보다는 낮고
지저분한 소문을 전할 때
보다는 높다

언뜻 저 사람과 그 옆 사람의 목소리하고 똑같다

우리 셋이 동시에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죠
진지한 모임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그저 소리만 낸다

아 아
교실은 소리를 머금은 상자가 되고

이가 나간 머그잔에 물을 담아 마시다가 바닥에 흘렸다
닦아내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물 위로 번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진짜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진짜사람들이 진짜미소를 지으며 진짜 멋진 진짜옷을 입은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행복이 밀려왔다
 
 
심사평 : 진짜·가짜, 진심·위선의 문제 유쾌하게 풀어내… 한국詩 밝힐 신예 출현
 
응모작들에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미래 지향적인 목소리가 부족한 대신 지금 우리 시대의 현실과 문제를 조용하지만 차분하게 관조하는 서정적이고 성찰적인 목소리가 감지되었다. 종교적 의미로서보다는 자기 존재 탐구의 수단으로서 신이나 천사 등 초월적 존재를 모티프로 한 시와 그 반대로 가까운 친척이나 동료들이 등장하여 익숙한 삶을 뒤집어보는 일상형의 시가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일상형의 시에서는 청년취업 문제나 주택 문제, 부채 문제 등과 관계된 시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심사는 예·본심을 통합해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거쳐 열한 분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자연과학이나 설화 등의 인유를 통해 오늘의 이야기를 담아낸 긴 산문형의 시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시적 짜임새와 수준이 만만치 않아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들은 ‘시창작기초’ ‘모델하우스’ ‘빛을 긁어낸다면’ ‘면접 스터디’였다.

‘시창작기초’는 알레고리 기법을 이용하여 손금의 운명선에서 거대한 사파리를 발견하고 동물들의 운명을 시 쓰기와 결합한 작품이었다. ‘손금’과 ‘밀렵’을 결합한 참신성이 돋보였지만 시적 확장성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모델하우스’는 현실감이 묵직하게 와 닿는 작품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제자리일 수밖에 없는 형제의 이야기가 형이 만든 축소된 아파트 모형 속 축소된 사람들과 분양대행사 직원이 소개하는 모델하우스의 대비로 실감 나게 전개되어 있었다. 청년 세대의 주거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다소 시적 구조가 평이하고 시행이 투박하다고 생각되었다.

‘빛을 긁어낸다면’은 여러 사물을 이질적으로 배치하고 혼합하는 시적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내면에서 맴도는 불투명한 시적 전개가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시의 앞부분에서 제시되는 다채로운 내면의 이미지들과 어우러지는 외연의 목소리를 기대했지만 그 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귤’ 하나로 시작하여 ‘아이’의 심리를 ‘일기장’과 ‘쿠키’ 등의 다양한 사물을 활용하여 입체화하는 시적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면접 스터디’는 시적 사건을 다루는 솜씨나 인식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드러난 수작이다. 취업 준비를 위해 면접 스터디를 한다는 시적으로 풀어내기 힘든 소재를 통해 진짜와 가짜, 진심과 위선의 문제를 유쾌하고 활달하게 풀어내어 힘 있게 읽힌다. 특히 진짜인 척 행사되는 현실의 거짓을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러니 형식으로 건드리는 자기식의 어법이 안착된 유니크한 솜씨가 발군이었다. 당선작과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에서도 오랜 습작기를 거쳤을 것이라고 믿어질 만큼의 정확한 문장과 개성, 그리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한국시의 미래에 풍요로움을 더할 탁월한 신예가 출현했다는 것에 흔쾌하게 동의할 수 있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시인
 
 
당선소감 : 말 안에 깃든 폭력성 ‘참을 수 없어서’쓴다
 
참을 수 없음.

저는 참을 수 없어서 시를 쓰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그토록 참을 수 없느냐고 묻는다면, 공교롭게도 어떤 ‘말’들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선함’과 ‘아름다움’과 ‘멋짐’과 ‘성실함’ 같은 말들 안에 깃든 폭력성을 참을 수 없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가훈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였는데, 언젠가부터는 ‘사회’라는 말도 ‘필요’라는 말도, 심지어는 ‘되자’라는 말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떤 말에 들어맞는 사람이 되면 사는 게 편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결국 제가 찾는 건 그 말들 너머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압니다.

그렇지만, 세계는 말로 이루어져 있고 말로 작동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의 말을 재정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둘러싼 세계와 불화하고 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을 수 없으니 뭐라도 쓰자. 그렇게 시 한 편을 쓰니 한 편을 더 쓰고 싶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말로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쓰는 사람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배우라는 뜻으로 저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동력을 불어넣어 준 문화일보와 심사위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이때까지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쓰는 행위의 기쁨을 몸소 알려준 엄마, 김분숙 씨. 고맙고 사랑하고 존경해요. 동생 영훈과 지호, 부족한 누나 언니를 늘 믿어주어 고마워.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저를 푸짐하게 먹이고 키워준 할머니와 이모들, 이모부들, 삼촌, 모든 친척들에게 감사합니다. 나와 함께 거침없이 흔들려준 친구들아, 고맙고 보고 싶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수업을 기웃거리며 많이 배웠습니다. 김선오 시인님, 김근 시인님, 김준현 시인님, 박소란 시인님. 문학을 좋아할 줄만 알았지 쓸 줄은 몰랐던 제 어설픈 시들을 애정으로 들여다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존재만으로 기쁨과 감탄을 주는 고양이 망고, 우리 건강하자. 밤비야, 여전히 너를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 알려준 재희에게 온 마음을 건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네가 호빵맨이 되어서 사람들이 네 얼굴을 뜯어먹는다면 어떨 것 같아?” 같은 질문들에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당신이 있어 나는 살아갈 수 있어요.

△강지수. 1994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제통상·금융투자학과.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4. 서울신문 

  
당선작 : 서울늑대/조명실 (이실비, 1995년생)  
 
 
서울늑대 
 
 
사랑을 믿는 개의 눈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공포야

이렇게 커다란 나를 어떻게 사랑할래?
침대를 집어 삼키는 몸으로 묻던 하얀 늑대
천사를 이겨 먹는 하얀 늑대

흰 늑대 백 늑대 북극늑대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매일 찾아가도 없잖아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헤어진 하얀 늑대 이제 없잖아

우린 개가 아니니까 웃지 말자
대신에 달리자 아주 빠르게

두 덩이의 하얀 빛

우리는 우리만 아는 도로를 잔뜩 만들었다 한강 대교에서 대교까지 발 딛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미워하기도 했다 도시를 강을 투명하지 않은 물속을
 
밤마다 내리는 눈
까만 담요에 쏟은 우유
천사를 부려먹던 하얀 늑대의 등

네 등이 보고 싶어 자고 있을 것 같아 숨 고르며 털 뿜으며

이불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영원

목만 빼꼼 내놓고 숨어 다니는 작은 동물들
나는 그런 걸 가져보려 한 적 없는데 하필 너를 데리고 집에 왔을까 내 몸도 감당 못하면서

우리는 같은 멸종을 소원하던 사이
꿇린 무릎부터 터진 입까지
하얀 늑대가 맛있게 먹어치우던
죄를 짓고 죄를 모르는 사람

혼자 먹어야 하는 일 앞에서
천사는
입을 벌려 개처럼 웃어본다
 
 

 
 
조명실 
 
 
그 사람 죽은 거 알아?
또보겠지 떡볶이 집에서
묻는 네 얼굴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이상하지 충분히 안타까워하면서 떡볶이를 계속 먹고 있는 게 너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게

괜찮니?
그런 물음들에 어떻게 답장해야할지 모르겠고

겨울이 끝나면 같이 힘껏 코를 풀자
그런 다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코를 흘리고 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손톱을 벗겨내는 속도를 이기길 바랐다
 
다정 걱정 동정
무작정
틀지 않고

어두운 조명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

초록색 비상구 등만
선명히 극장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이 지옥이라면

관객들의 나란한 뒤통수
그들에겐 내가 안 보이겠지

그래도 나는 보고 있다

잊지 않고 세어 본다
 
 
심사평 : 능숙하고 절묘한 이미지 배치와 전개가 압도적 작품
 
신춘문예 작품을 검토하는 일은 새로운 시의 경향을 감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2651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백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팬데믹에 이어 전쟁과 기후위기 등 우리 삶의 불안이 참담한 형태로 가시화되는 한 해였던 만큼 그런 경향이 작품에도 반영됐다. 불안한 오늘날의 삶과 온몸으로 맞설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심사를 진행했다.

본심에서는 네 명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김보미의 ‘제 자리’ 외 4편은 유려하게 운용되는 시의 맛이 뛰어났다. 그러나 오히려 그 유려함이 시인만의 개성적인 시선과 태도를 가려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다. 백민영의 ‘피에타’ 외 2편은 숙련도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의 구조와 전개 모두 능숙했지만 결국 그 모든 이야기가 혼자만의 이야기로 귀결되고야 말았다. 조금 더 크고 넓은 운동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끝까지 고민한 작품은 이영서의 ‘멀어지는 기분’ 외 2편이었다. 개성적인 시선과 발화가 만들어 내는 흥미로운 세계가 눈길을 끌었지만 단조롭거나 무리한 전개를 보이는 대목이 있었다.

당선작으로 이실비의 ‘서울늑대’와 ‘조명실’을 선정했다. 능숙하고 절묘한 이미지 배치와 전개가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시란 세계를 재구성하는 일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서울늑대’는 늑대가 되어 서울을 달리는 “두 덩이의 하얀 빛”을 통해 가장 내밀한 공간에서부터 드넓은 도시의 이미지까지 아우르며 그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냈으며, 식당에서의 대화가 극장 조명실의 독백으로 전환되는 ‘조명실’은 죽음과 사랑, 불안과 고독 등을 극장 뒤편의 그림자 이미지로 모아 그것을 묵시하는 우리 시대의 초상을 추출하는 데 성공해 냈다.
 
시인은 내밀한 고백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자다. 당선자는 그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앞으로도 자유롭게 이 세계를 유영하기를 바란다. 본심작을 포함해 뛰어난 투고작이 많았다. 머지않아 다른 지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투고한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시에 대한 우리의 열의가 있는 한 시는 끊임없이 우리 삶과 더불어 이 세계와 대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소연·박연준·황인찬
 
 
당선소감 : 
 
누군가는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잃어버리고… 나는 슬펐다. 슬프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시로 썼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될까? 어둠 속에서 얼굴을 굶기는 사람들. 극장에서 그들이 관람하는 모든 것을 같이 목격하고 싶었다. 겁에 질려도 끝까지 눈을 피하지 않는 시를 쓰고 싶었는데.

이 눈싸움을 통해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됐다. 나는 시를 계속 쓰는 내가 좋았고 싫었다. 내가 자랑스럽고 창피했다.

시 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잔뜩 웃고 떠들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이상했다. 나는 아픈 시만 줄줄 써 댔는데, 그들이 쓰는 시도 그랬는데… 우리는 만나면 신나고 들떠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시를 쓰면 처음에 하려던 말에서 아주 멀어져도 이해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겁먹은 제 시를 기꺼이 믿어 준 심사위원 김소연 시인님, 박연준 시인님, 황인찬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여름, 용기를 나눠준 이영주 시인님과 포에트리앤의 얼굴들 감사해요. 언제나 나를 무던히 지켜봐 주는 이들. 사랑하는 내 가족 민준 홍시 대추, 401호 연재와 민경, 건강원 고은과 효정, 그리고 현경이에게 많이 고마워요. 시를 쓰며 만났던 동료들의 꼼꼼하고 상냥한 진심들을 오래 기억하고 있어요. 적당히 두려워하며 씩씩하게 계속 쓸게요.

■이실비 ▲1995년 강원 속초 출생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5. 세계일보 

 
당선작 : 웰빙 (한백양, 1986년생)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박대할 수 없으니까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배가 출렁일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옷을 사러 갔다가

옷도 나도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잔뜩 칭찬을 듣는 것

가끔은 진짜로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쉴 새 없이 말을 속삭일 때마다
내 어깨는 더욱 비좁아져서

부모가 종종 전화를 한다 밥 먹었냐고

밥 먹은 나를 재촉하는 부모에게
부모 없이도 행복하다는 걸 설명하곤 한다
 
 
심사평 : 안도현·유성호 “일상과 불화·화해하는 아이러니 잘 담아내”

 
시 부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잘 조직된 언어적 매무새에 정성을 쏟은 시편들이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최종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김은유씨의 ‘바깥공상’과 한백양씨의 ‘웰빙’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상의 완결성과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참작하여 ‘웰빙’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바깥공상’은 방 안에서 상상해 보는 바깥의 세상을 얼룩과 이불이라는 소재로써 개성적으로 풀어낸 가편이었다. 민활한 심리적 움직임을 단정한 흐름 속에서 명민하게 포착하고 서술한 면이 돋보였다. 선정하지 못해 끝내 아쉬웠다. ‘웰빙’은 스스로의 일상과 때로 불화하고 때로 화해하는 심리적 교차점을 잘 그려냈다. 존재론적 확장을 희망하는 마음이 선연하게 형상화되었으며, 그러한 희망을 때로 억압하고 때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반어적으로 잘 담아냈다. 삶의 아이러니를 긴 호흡으로 구성해 가는 만만찮은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웰빙 아닌 웰빙의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좀 더 누군가에게 잘하고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면서 진짜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희망앓이를 하는 마음이 잘 나타났다. 앞으로도 서정성과 일상성을 잘 결속하여 구체성 있는 삶의 서사를 잘 온축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도 구체성 있는 필치와 시상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드러낸 시편들이 많았다. 당선작은 언어 구사의 참신함과 완성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당선자에게 크나큰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응모자 여러분께 힘찬 정진을 당부드린다.

 
 
당선소감 : “모두에 감사… 지금보다 나은 모습 보일 것”

 
나는 될 줄 알았다. 그러니 여러분들 또한 될 것이다.
 
이 문장까지만 쓰고 많은 문장들을 떠올렸다가 지웠다. 대개의 시 쓰기와 다르지 않다. 최선의 문장을 선택했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문장이 있을 거란 망설임. 어쩌면 위 문장이 이미 완결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여러분들 또한 될 것이다’ 그것이 등단이든, 인생의 어떤 성취이든, 혹은 말 그대로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든 상관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어떤 기분이든 우리 앞에 나타나는 법이니까.
 
그러니 할 일을 하자. 글을 쓰고 삶을 살고, 불행과 행복을 반복하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던 것과 달리, 할 일이 있었고, 할 일을 다 마친 다음에는 완만한 기쁨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겠지. 어떤 일은 기쁘고, 어떤 일은 슬플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일들은, 감정은 흐르고 있다. 무엇도 어떤 것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다만 희망과 예감을 노 대신 저어가며 우리는 흐름을 견뎌야겠지.
 
좋은 시를 쓰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번 일을 성과라고 여기고 싶진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무척 불안하다.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내 잘함이 과연 잘한 게 맞을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일단은 나아가야 하고, 그것이 내게는 시인 것뿐이므로. 그래서.
 
나는 내가 될 줄 알았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또한 될 것이다. 가족과 친지들, 선생님들, 그리고 모자란 내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까지. 감사해야 할 분들이 그득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지금보다 나아진 나여야 할 것이고, 나아가기 위해선 지금을 박차는 힘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그 힘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겠다. 모두에게 온전한 감사를 담아, 좋은 시를 쓸 것이다.
 
●1986년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개인 교습.
 

6. 조선일보 

 
당선작 : 죽은 새 (추성은, 1999년생) 
 
 
죽은 새

그 옆에 떨어진 것이 깃털인 줄 알고 잡아본다
알고 보면 컵이지
 
깨진 컵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새를 파는 이들은 새의 발목을 묶어둔다
 
날지 않으면 새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척 새를 산다고, 연인은 말한다
나는 그냥 대답하는 대신 옥수수를 알알로 떼어내서 길에 던져두었다
뼈를 던지는 것처럼
 
새가 옥수수를 쪼아 먹는다
 
몽골이나 오스만 위구르족 어디에서는 시체를 절벽에 던져둔다고 한다
바람으로 영원으로 깃털로
돌아가라고
 
애완 새는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
차라리 그런 것들에 가깝다
 
카페에서는 모르는 나라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국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마 표기는 튀르크어와 가까운 음악이고
아마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이라는 제목일 것이고
 
새장으로 돌아가라고……
아마 그런 의미겠지
 
연인은 나 죽으면 새 모이로 던져주라고 한다
나는 알이 다 벗겨진 옥수수를 손으로 쥔다
 
쥐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컵은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
 
노래도 아니고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도 아니고
 
진화한 새라는 것
위구르족의 시체라는 사실도
 
새의 진화는 컵의 형태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사람이 잡기 쉬운 모습이 되겠지
손잡이도 달리고 언제든 팔 수 있고 쥘 수도 있게
 
새는 토마토도 아니고 돌도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죽어갈 것이다*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건 어디서 들어본 노래 같고 나는 창가에 기대서 바깥을 본다
 
곧 창문에 새가 부딪칠 것이다
깨질 것이다
 
 
심사평 : 감각·사유·언어를 오가며 빚어낸 ‘미래의 시인’
 
시는 긴장이고 충돌이다. 도전이고 모험이다. 새로운 시는 안전이나 완전과는 멀리 있다. 뛰어난 시는 지금-여기에서 저기-너머를 꿈꾸게 한다.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본심에 오른 열두 분의 작품 중 세 분의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가 집중되었다. ‘졸업’ 외 2편은 거침없이 활달하다. 젊은 세대의 구어적 말맛과 비약적 대화를 극대화하여 시적 긴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경쾌함이 겨냥하는 것이 불분명할 때가 잦아 맥이 풀리기도 한다.
‘무인 가게’ 외 5편은 절제된 안정감이 돋보였다. 농(濃)과 담(淡)을, 완(婉)과 곡(曲)을 살려 시를 의미화하고 전경화하는 재능은 시인으로서 큰 자산이다. 시대적 징후를 잘 포착한 「무인 가게」는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단지 다른 시편들에서 보여준 설명적 부분을 덜어내고 특유의 응집력으로 시적 개성을 확보하기를 권한다.

 
 

추성은 씨를 새로운 시인으로 추천한다. 감각, 사유, 언어라는 시의 세 꼭짓점을 오가며 빚어낸 그의 시편들은 읽는 사람을 충분히 매료시키며 시의 안쪽에 오래 머물게 한다. 당선작 ‘벽’은 녹록하지 않은 신예의 탄생을 예고하는 수일(秀逸)한 작품이다. 버드 스트라이크 혹은 조류 충돌의 새에게 사람 사는 곳이란 온통 부딪힐 수밖에 없는, 차단된, 차가운 벽이다. 그러니 ‘새’의 선택지는 진화하거나 깨져 죽거나, ‘창’ 안에서 ‘옥수수’를 받아먹으며 길들거나 창의 ‘바깥’으로 넘어서거나, 숱한 ‘새 아닌 새’가 되거나 ‘진짜 새’가 되거나일 것이다. 비단 새뿐이겠는가. 이 시가 반문명과 비인간을 지향하는 시로 읽히는 대목이다. 미래의 시인으로서 우리 시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길 기대한다.
 
정끝별, 문태준 
 
 
당선소감 : “넌 시인의 이름을 가졌어” 그 한마디가 나를 지켰다
 
선생님은 나에게 시인의 이름을 가졌다고 했다. 그 기억은 각별하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던 것 같지. 그것은 일종의 예언이기도 했으나, 시를 쓰는 나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시인이 된 내가 있다. 이게 나의 대답이에요. 그동안 나는 매번 다른 이름이 되어서 다른 시를 썼고, 그 사이에 선생님은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한 번도 선생님의 이름을 불러본 적 없는 것 같다.
아주 희박한 관성이 나를 움직인다고 느낀다. 21세기에 시를 쓴다는 것. 사랑 없는 세계에서도 아직도 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현실을 호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시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믿고 싶기도 하다. 세계가 돌아가는 논리. 나의 관성. 그건 가장 가까이 있는 거라고.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지. 애호박을 살지, 상추를 살지. 그 정도에 그치는 거야. 나의 시는 멀지 않은 징조가 좋겠다. 그건 모두의 이름 같은 거다. 나를 지켜준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나의 이름이었으니까. 당선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기쁘고도 충만하다. 이제 나는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해야지.

 
 

대학 강단에서는 법을 가르치지만, 나에게는 법 대신 사랑을 가르쳐준 아빠. 그리고 나를 믿어주던 우리 엄마. 오빠. 모든 가족. 전화 주셔서 고마워요. 항상 내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주는 윤채. 또 금지야, 너와 함께 뜨던 뜨개실이 지금의 나를 완성한 것 같다. 수연, 시현. 언제나 내 고향이 되어주는 친구들. 그리고 승현, 우리, 서윤. 지금 우리 모두 다른 걸 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영원히 문연자의 새벽에 남아 있어. 너희가 있어 글과 함께한 기억은 기쁘고도 애틋해. 기쁜 소식은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소중한 서인, 선민, 정우. 나에게 시인의 이름을 붙여주었던 박정원 선생님. 그리고 이승하 선생님, 김근 선생님, 이수명 선생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이곳에 다 담지 못한 나의 소중한 이름들에게.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낸다. 나는 계속 쓸게요.

 

-1999년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7. 한국일보 

 
당선작 : take (김유수, 1998년생)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불렀다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그것의 코트가 차갑다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을까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직장인이 따분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시인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를 주워 간다 그러한 쓰레기의 용도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눈을 질끈 감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옷을 건네주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을 코트로 덮어버렸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 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나는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이 거리의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행려는 서울역 앞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담배꽁초에 나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그것이 서울역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의 시계가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심사평 : "세대의 물음, 시대의 울림으로 다가와"
 
전부 그런 것은 아니나 많은 신춘문예 당선 시에 적용 가능한 불문율이 있다. 지나치게 길지 않아야 한다는 것, 욕이나 비속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불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우리가 김유수의 'take' 외 4편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불문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유수의 시들은 길고, 욕이 나오고, 삐딱했다. 이른바 '신춘문예용' 시와는 거리가 있었다. 원고를 옆으로 미뤄 뒀다가 앞으로 당겨와 읽기를 반복했다. 정공법으로 튼튼히 지어 올렸으나 창문 하나 열어놓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처럼 갑갑한 시들 사이에서 김유수의 시는 시원했다. 펄럭였다.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궁금하게 했다.
마음과 생활이 바닥나서 남의 집 담장이 누울 자리로 보이는 일상의 일대를, 죽음이라는 막연한 일엔 쏟을 힘조차 없으면서도 친구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리는 장례의 한복판을, 시간의 타들어 감을, 실험용 쥐가 머물던 투명한 상자와 같은 기억을 통과해 마침내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결론의 발단에 도달하도록 짜인 김유수의 ‘몽타주’는 힘 있고 개성적이었다.

 
 

당선작인 'take'는 '그것'이라는 대명사의 활용만으로도 한 편의 시를 넓게 확장하고 있었다. 그것의 자리에 대신 삽입할 수 있는 '그것들'을 생각할수록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는 걸까"라는 세대의 물음이 시대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김유수의 시와 함께 마지막까지 거론된 이영서, 최기현의 시들에 관해서도 덧붙인다. 두 분의 시 역시 각자의 개성으로 고유했다. 올해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아니었더라면, 어떤 지면에서든 곧 만날 수 있으리라 믿음을 주는 시들이었다. 이영서의 시는 담담했다. 진술과 묘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인상적인 서사를 구축할 줄 알았다. 여름-새-활주로-아스팔트-옥수수-아이들로 스멀스멀 전개되는 최기현의 표제작은 팽팽한 긴장감이 매력적이었다. 시가 뉘앙스만으로도 사건의 전모를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믿음직했다. 보통 마지막까지 경합하다 낙선하게 된 작품들에는 아쉬운 소리가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적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 우리는 '시의 홀가분함'에 한 발짝 더 다가서기로 했다는 것을 밝힌다.
더 많은 독자가 김유수의 시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에 기쁨을 느낀다. 어느 지면에선가 김유수의 '담장과 바닥'을, '친구 없는 삶'을, '쥐 소탕 작전'을, '결론이 구려서'를 만나게 된다면 우정 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신춘문예의 불문율로 시작했으니, 다시 그것과 관련된 말로 끝맺으려 한다. 시인은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심사위원 김현(대표 집필) 박상수 이수명
 
 
당선소감 : "덫이 날 빠뜨리는 중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입장하겠다" 
 
벽 앞에 서 있을 때가 많다. 뻔한 비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다. 벽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시를 쓸 때 그랬고 아닐 때도 그랬다. 약력에 쓸 것을 남기지 못한 나의 20대는 막다른 길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길을 가로막는 벽 앞에 설 때마다 나의 힘은 항상 부족했더랬다. 이를테면 등단과 미등단 사이의 벽이 그랬다. 그럼 나는 지금 힘을 키워 벽 하나를 뛰어넘은 걸까? 정말 기쁘지만 그렇지 않다. 죄송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말을 하나 싶다. 배부른 소리 말라고 혼내실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여전히 벽이 있겠다. 오늘 밤도 벽 앞에 앉아 있겠다.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 어쩌면 시를 쓸 때마다 그러한 실패의 확인과 응시를 반복할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무력감을 앞으로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을까? 스스로 질문한다. 그리고 변변찮은 대답을 내놓는다. 오늘 밤도 벽 앞에 앉아 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겠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꺼내 읽겠다. 거기에 나의 길이 적혀 있겠다. 벽 너머에는 네가 있겠다. 그런 믿음으로 벽을 응시하겠다.
네가 있어 감사하다는 말이 영원히 부족하겠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너라고 불러본다. 금은돌 시인과 김승일 시인. 너라고 불러본다. 심사위원 선생님들을 너라고 불러본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것을 자주 상기하는 내가 되겠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 네가 있음을 볼 줄 아는 내가 되겠다.
너는 지금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중이겠지? 하지만 때로는 너를 덫이라 부르고 싶기도 하겠다. 혹여나 덫이 나를 빠트리는 중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입장하겠다.
 
△1998년 경기 안성 출생
△양업고등학교 졸업
 

2024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심사평, 당선소감 포함) __ '시와 지성' 동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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