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璧
나뭇잎도 계속 모으면 나룻배 한 척쯤 만든다 해서
설마 했지만 몇 년을 또 그러모았나 모르겠습니다
밖엔 내내 비가 오고 축축한 잎새들 차곡히 쌓으면
금세 한 뼘 나무토막쯤은 만들 수도 있었겠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네가 서 있고
벽을 타고 오를 담쟁이 잎은 차곡한 빗물을 머금고
쓰러지지도 않을 벽이 견고하기만 해 그저 애달파
세찬 바람이 훅 불어오면 또 몇 장 금세 흐트러지고
연신 무너질 것 같던 잎새들도 꾸역꾸역 챙겨야 해서
비가 그칠 때까진 전전긍긍해야 할 시절만 불안한 채
족히 몇십 년 더 걸리는 게 맞을 일인지도 모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내가 서 있고
벽을 타고 오른 담쟁이 잎이 차곡한 빗물을 머금고
쓰러지지도 않는 벽 너머 미지의 세계를 향합니다
벽이 서 있고
내내 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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